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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 2017. 12. 10. 16:09


오늘 날씨가 몇 년 전 항주에 갔을 때와 비슷하다. 산 위엔 소복히 눈이 쌓이고, 산 아래엔 눈이 땅에 닿자마자 녹아버린다. 없었던 것처럼. 꿈처럼. 


며칠 전 생일 저녁엔 눈이 펑펑 내렸다. 십 몇 년 동안 못 본 일인데.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안다. 나는 복이 많다. 내가 복이 많다는 걸 나 자신만 모른다. 알면서도 모른다. 슬픔에 빠져있느라. 


항주에 함께 갔던 친구와는 모르는 사이가 되었다. 그 일이 있었던 뒤로 여기에 뭘 쓰지 않게되었다. 여기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걸 털어놓는 곳이니까. 나는 사람의 감정을 잘 모르겠다. 뭔가를 구별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사람은 눈에 열망을 담고 호의를 보이며 경멸한다. 왜 솔직해질 수 없는걸까? 자기 자신에게조차. 어떤 사람은 열렬히 날 싫어하고, 어떤 사람은 열렬히 나를 좋아한다. 그 둘이 같아 보일때가 있다. 경멸을 내뱉는 말도 애정을 내뱉는 말도 내가 그사람에게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며 해줬던 말에서 온 말일 때, 어떤 말은 토씨 하나 틀리지가 않다. 그 사람은 그 말에 공명하고 내가 했던 말인 것은 잊어버리고 나를 볼 때 오직 피사체로서만 본다. 거울처럼. 자신을 본다. 얼마나 외로운가.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없다는 것은. 


모두 지나가고, 지나가고. 


얼마 전 심리테스트를 했는데, 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가 - 에 눈사람을 그렸다. 유쾌함. 타인은 나를 어떻게 보는가는, 소나무. 곧다. 였고. 


나는 허허실실한 사람. 눈이 오는 날은 좋고, 싫다. 눈 속으로 사라질 수 있을 거 같아서, 흩어질 수 있을 거 같아서, 녹을 수 있을 거 같아서 좋고. 눈이 오는 풍경을 계속 걸어야하기 때문에 싫다. 그게 나의 현실이자 삶이기때문에. 사라질 수 없으니까. 내가 사라지려고 마음 먹었을 때, 눈 속에 숨어 웅크려 눈을 감았을 때, 땅에서 온기가 올라왔다. 나는 눈으로 되어있지 않고 그러니 바람 속으로 흩어질 수가 없는거야. 납득했다. 그 때 나는 붉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찾아주길 바랬던 걸까? 기다렸던 걸까? 


이제 그 모든 건 외로움이었다는 걸 안다. 


사람은 왜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필요한 걸까. 왜 혼자서 살아가지 못할까.


 나는 왜,


지난 내 시간들이 싫고 가엾다. 


이 몸에 감긴 후유증도 언젠가 떨쳐질까. 


눈으로 덮인 세상은 꼭 다른 세상만 같다. 언제나 거기 있던 풍경인데도. 삼 년의 시간을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고 얻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나는 의무가 뼈니까. 가까스로 이어진 명줄은 어디부터 얽어 이어진걸까? 어디쯤이 끄트머리였을까? 


이전의 삶은 끝났다. 고통도 병도 번뇌도 가시도 독도 늪도. 그런 것들이 정말 실재했었나? 나는 음악을 고치로 양육되었다. 쌓이는 것과 부서지는 것을 안다. 형태 없는 것의 형태를, 순간이 무엇인지 안다. 잊혀지고 싶다. 존재하고 싶다. 존재하지 못한다면 잊혀지고 싶다. 존재한 적 없었던 것처럼. 기억되기보다 존재하고 싶다. 남의 기억은 내 알 바 아니고, 내 기억도 내 알 바 아니고, 오해도 해명도 진실도 내 알 바가 아니고. 순간만을 갖고 싶을 뿐. 


막이 내린다. 삶이 끝나지 않고 막이 내린다. 페이지가 넘겨진다. 지나간다. 그리고 또 다시 새로운 백지가. 




Posted by 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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