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private radio R.L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17)
in the end (4)
in the bed (12)
on the tea table (12)
come in alone (26)
come, as you are (33)
tea caddy (5)
a moon in the water (1)
Total
Today
Yesterday

달력

« » 2024.10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올라온 글

 

 

...예술이 위대한 것은 무릇 기술적인 지식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가장 기술적인 연구에 의해 큰 감동을 받는다는 사실에 있다. 문제는 그런 구조의 묘(妙)였다. 본래의 악보와 다르게 연주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감동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감상자는 분석에 앞서 먼저 경탄을 품었을 것이다. 감상이란 오히려 그런 경탄부터 밝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쇼팽이 포르테를 무시한 것이 사람들을 경탄하게 한것이 아니다. 먼저 경탄이 있었고, 그 경탄의 내용을 조사해보니 우연히 그 사실이 발견되었다고 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그런 견해가 음악적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피아노 연습생들이 그렇게 믿으면서 은근한 우월감을 품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생각은 회화를 감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회화의 기법상의 문제에 대해 그처럼 자각적인 화가는 없었다. 그처럼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예민하게 검토하고 이해하는 화가는 없었다. 그러나 걸작을 마주할 때 가장 먼저 엄습하는 것은 항상 보다 소박한 경탄이었다. 구체적인 분석은 나중에 찾아오는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분석한 후의 다양한 발견을 종합해봐도 결국 처음의 경탄을 채우기에는 불충분했다.

그가 항상 미술관을 나서는 학생들이나 평론가들의 논의에 난처해하는 것은, 그들이 그러한 경탄을 그냥 지나쳐버린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었다. 혹은 그 경탄을 잊어버리거나 스스로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지식의 증가가 감성의 마모를 초래한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현상인가? 그런 현상이 사람들 사이에서 이토록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은 어째서일까? 그런 영악한, 그리고 대부분 진부하고 그다지 대수로운 발견도 아닌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2006.05.27

 

 

 

Posted by R.L
, |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