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태우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점토를 아무렇게나 뭉친 것 같은 심통[痛], 시간이 흐르고 굳어져 뭉친 자국이 흉터처럼 각인될 지경이 되어서야 겨우 알아차리게 되는 고약한 성질의. 심장에 엉겨붙은 굳은 흙덩어리를 태워 후두둑 떨어트리게 하는 그런 몽롱한 후련함을 알게 되었다. 작년의 일인 것 같다.
동생이 타지에 나가면서 두고 간 말보로 한 갑을 나는 홍차틴으로 가득 찬 서랍에 넣어두고 생각이 날 때마다 한 개피씩 꺼냈다. 이제 다섯 개피가 남았는데, 입으로 잘근잘근 씹어 필터만 못 쓰게 만들고 버린 것이 두어 개피쯤 되니까 평균을 내어보면 한 달에 한 개피다. 이렇게 계산해보니까 꾸준히 피운 것만 같네.
나는 능숙하지도 미숙하지도 않게 첫 담배를 태웠는데, 아직도 그렇게 태운다. 익숙해지지도 않고 잊어버리지도 않고.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태워버리고 나면 원하게 될까, 매캐한 연기를 돈을 지불하고 사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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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것은 묶이는 일이다. 두려운 것은 자신에 대한 통제를 잃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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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해 재잘거렸다. 영상에 몰입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공간을 시간을 현재를 좋아하는 것들로 꾸며놓고 들어갔다. 노력해서 들어갔다. 나는 내가 얼고 있는지 녹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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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가 말했다. 진짜를 요구하는 나는 오만하지만, 그럴 자격이 있다고. 그리고 진짜를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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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서는 겸손을 자주 부리면서 이따금 성질머리가 드럽고 까다롭고 오만하다고 고백하는 나는 그제서야 내 오만을 납득했다.
고고한 오만함. 나는 어지간한 것들을 불평없이 씹어먹을 수 있겠지만, 선택의 영역이라면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절대로 손에 쥐지 않을 것이다. 그 높고 까다로움이 확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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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진짜는 없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살아있는 진짜는 없으니까. 이미 잃었으니까, 땅 속의 씨앗인채, 깨지지 않은 알인채 끝나버렸으니까. 껍질 밖으로 나오지 못해서, 땅 위로 올라올 수 없었으니까. 자신만 품다 끝나버렸으니까. 나는 원하는 것이 없었다. 그때도, 또 두 번째도. 차마 바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사람은 홀로 태어나 홀로 죽는데, 자기 자신도 어쩌기 힘들잖아. 자신의 무게를 버겨내는 것만으로도. 소유욕의 끈적함을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에 비해,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아득하게 멀고, 꿈 같았고, 닿았던 순간은 찰나였나. 눈이 손에 닿아 녹는 순간의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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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는 것은 자신에게 지지 않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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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의 무게에 맞서는 것인 동시에, 외부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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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를 읽고 있다. 도서관에 안 가다가 못 간지 어언 일 년 바안. 문화센터의 책장에서 힘겹게 책을 고르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코끼리 공장 어쩌구와, 발랜타인과 무말랭인가 어쩌구..를 보고 분노했다. 재미도 없고 라디오에서도 안 할 시시껄렁한 잡담을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유만으로 번질번질한 종이에 인쇄에 양장으로 엮어낸 것을 보고. 내가 읽은 것은 스푸트니크의 연인과 몇몇 단편집, 수필집 정도인데, 괜찮게 보았던 단편집을 다시 읽어보아도 어딘가 심기가 거슬리는 부분이 있어서 꼰대라고 까고 싶었다. 그런데 대표작은 하나도 안 읽었던지라.
나는 너무 바글거리면 어쩐지 한 발 물러나게 된다. 아마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 습관때문에 그런가. 베스트셀러는 예약까지 꽉꽉, 매대에서 인파를 비집고 물건을 손에 쥐는 것과 비슷한 수고로움이므로, 나는 그 사람들이 흩어질때까지 다른 것을 기웃거리는 습관이 든 것 같다.
그래서, 상실의 시대가 노르웨이 숲으로 민음사 고전계열에 끼게 된 이제서야, 상실의 시대 구판을 뒤적이고 있는 것이다.
거리를 재는 것 뿐. 그것만을 할 수 있을 뿐. 이라고 했었나 오래 전에 본 말인데, 달리의 시계 이미지만큼이나 고집스럽게 기억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젠 나도 알게 됐다. 결국 따지고 보면-하고 나는 생각한다-글이라는 불완젆나 그릇에 담을 수 있는 건, 불완전한 기억이나 불완전한 상념밖엔 없다는 것을' - 상실의 시대
동생방에서 발굴한 아사쿠라 다쿠야의 '눈의 야화'를 읽었다. 어딘가에서 이런 말을 보았다. '설'명하지 말고 '표'현하라고.
다장조같은 책이었는데, 다장조의 미덕도 갖고 있었고. 하지만 너무 친절하달까. 표현에 설명을 덧대어 놓은 게 꼭 자전거의 보조바퀴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보니 일본작가는 설교를 하는 편이라고. 일드에도 종종 나오지 스낵바의 마담이나 관록있는 형사나.
그러니까 나는, 그가 명민해서 얄밉다.
단편집에서 이미 꼰대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1Q84까지 죽 읽으면 뭔가 좀 보이겠지.
'영악한 악녀가 아니라 진정한 팜므파탈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라고 했던 온다 리쿠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어떻게 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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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의 말은 큰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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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을, 자신을 믿지 않는데, 자신과 타인에 대한 불신은 서로 핑퐁을 하며 공을 살려놓는다. 멈추지 않는다. 시발점도 유지되는 원인도 알고 있는데, 눈을 감아버리는 것 말고 질질 끌려가지 않는 방법은 몰라서.
자신의 생각이나 감각에 대한 불신이 있다. 확인하고 두드리고 디디고, 내 역량만큼 포인트를 정해놓고 최대한 파악한다.가 기본. 시점을 이리저리 돌려보는 것은 딱히 단점이 아니다. 에고란 결국 간격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과잉, 과부하가 걸린 다는 거겠지. 나는 내 무게에 짓눌린다. 내 무게만이 아닌 무게, 울려서 메아리로 증폭되어 돌아오는 소리에 머리가 울리듯 나는 짓눌린다. 굳어버린다.
그 경직을, 통제권의 상실을 두려워하니 나는 최선을 다해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고, 온 집중력을 다하기 때문에 성공률도 높고. 또 하나의 역인 현재, 사실이 존재하게 된다. 나는 거짓말에 서툴러서 대단한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린다. 역에서 역으로 반복하는 동안 나는 생각한다. 언젠가 이러다 뻥 터져버릴 거라고. 자신이 너무 싫어졌기 때문에 그래야 마땅하다고 여기고, 터질거라던가 터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 유일한 바람이자 마땅한 일인 것처럼.
꿈과 현실이 어그러져버린 때부터.
똑바로 봐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전에 납득했다. 내 집요함과 집중력은 언제나 그런 곳에 발휘되었다. 파고, 파는 것. 하지만 그렇게 드러난 현실은 언제나 내 근력보다 무거웠고, 나는 이제 지쳐서 단련의 쓸모조차 의심스럽다. 기력도 예전과 같지 않거니와 방향도 잘 모르겠고, 뭔가가 시작된다면 그건 아주 길 것 같고, 어려울테고, 자신같은 것은 가져본 일이 드물어서. 그리고, 나는 아주 달라질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해 온 방식은 모두 낡은 것이 되고, 전혀 다른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아우르면서도, 전혀 다른 것.
내가 이 극을 벗어날 수 있을까?
착취하거나, 착취당하거나. 베풀고 받는 것, 애와 어른, 지켜주고 기대는 것. 그런 극, 역과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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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퓨리가 캡틴에게 말했다. 아무도 믿지 말라고. 그래서 캡틴은 어떻게 하냐면, 사람을 참 덥석덥석 믿어버린다. 동료를 모으고 심지어 쉴드에서 말 한마디로 히드라 멤버들을 솎아내 버린다. 캡틴 로저스가 누구냐, 그 군대에 지원해도 받아주지 않는 몸으로 국가, 약자, 타인에 대한 봉사정신을 소유한데다 그 마음을 확신해서 역변에 성공하는 인물, 신뢰가 무기인 사람이 아니던가. 토르처럼 강함을 타고나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 고결한 마음 하나를 가지고. 자신을 믿는 사람, 자신이 무엇인지 알고 그 무게를 견디고 자신의 간격 밖으로 손을 뻗는 사람. 캡틴이 정말 대단한 건, 나는 이러니까 퓨리의 말을 튕기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참고하고 그렇게 흔들리면서도 결국 자기 자신이 된다는 점이다. 그는 정말로 강하다. 옳은 뜻이 실재하게 만드는 건 그런 사람들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