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쁘지 않은 하루였다. 물건 몇 개를 처분했고, 날이 더워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라테가 심각하게 맛이 없어서 허탈해 하는데 비가 쏟아졌다. 플레이 턴에서 romantic production의 maiden voyage가 흘러나왔다. 소나기는 어느새 장대비로 바뀌고 나는 멍하니 창 밖을 내다보았다. 저녁 일정을 취소하고 집까지 천천히 걸어왔다. 걸을 때마다 공기 중에 떠도는 습기가 감겨왔다.
결국 운동도 포기하고 잠시 늘어져 있는데 다시 비가 쏟아졌다. 며칠 전에 마시다 남은 포도주를 따라 마시며 아비정전을 보았다. 음악처럼 보았다. 손이 따뜻해질 때즈음 붉은 글씨가 올라왔고 술도 동이 났다. 엄마가 들어왔다.
나는 이따금 생각한다. 싸구려 소설의 주변인이 된 것 같다고. 책이라도 절대로 읽지 않을 이야기. 그 이야기에서 나는 눈을 돌릴 수 없다. 외면할 수 없다. 내가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도 휘말리는 것도 선택하지 않았지만, 무엇이라도 똑바로 보기로 그렇게 다짐했다. 선택을 했다. 하지만 글쎄, 글쎄.
나는 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대략의 인적사항 신변부터 사소한 감정선까지. 사람도 상황도 가린다. 한 발 물러서서 상대가 내 이미지 중 어떤 것을 택하는지 보는 것은 효과적인 자기방어지만, 그게 목적은 아니었다. 나는 부끄러웠을 뿐이었다. 발 밑만 겨우 디디며 온 내 인적사항은 딱히 나를 반영하지 않고, 감정선은 감추는 게 덜 손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고. 나는, 있으면 안 되는 곳에 존재하는 사람 같았다. 언제고 누가 와서 뭔가 잘못되었다고 나에게 양해를 구할 것만 같은. 뭐가 부끄럽냐면 나는 자신이 부끄럽다. 부끄러웠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숨 쉬고 있는 게 싫을 정도로.
나는 너를 잃을 수 없다. 그 말 하나에 기대어 여기까지 왔다.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하며. 그 말이 적힌 이야기도 어쩌면 삼류소설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혼자라고, D가 말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또 다시 말 못할 이야기를 갖게 되었다. 혼잣말로도 내뱉지 못하는 이야기를. 폐에 엉겨붙은 것처럼 토해지지 않는다. 아무리 목구멍 안을 긁어보아도.
전에 누가 이런 말은 한 적이 있다.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을 거라고. 그 말을 들으며 참 고약하다고 생각했다. 미안하다고 하면 용서를 하고 잊어버릴텐데.
미안하다고 하면 용서를 하고 잊을텐데. 원망하지도 않고 잊지도 않았다. 말을 하는 것은 그렇게나 힘들고 불쌍한 자신에게 가책을 느끼게 하는 무정한 일이라, 그 자기방어에 지쳤기 때문에 나는 이제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두려울 때마다 모두 사라지고, 나가고, 죽으라고 하는 소리가, 죽겠다고 하는 소리가 나를 넝마로 만든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아서 침묵이 버거워지면 내 눈치를 본다. 그리고 그 상태를 마땅찮기 때문에 허를 찌르듯 또 툭툭. 나는 옆에서 찌르지 않아도 언제나 찔린다. 그저 반응하지 않을 수 있을만큼 익숙해진 것 뿐이다.
고의인가? 아닌가?
아버지는 용서를 잘 비는 사람이었다. 끈질기게 같은 말을 고장난 라디오처럼 반복하며 고개를 숙이면 결국 모든 것은 괜찮아졌다.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채로 괜찮아졌다. 아버지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다. 아마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다 용서를 한다고 해도 나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게 버겁기 때문에 끝만을 기다리고 있다. 있었다. 있다. 이런 게 바로 부끄러운 이야기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을 이야기다.
그리고, 용서하지 못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용서를 구해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그러지 않겠지만. 뭘 잘못한 지도 모르겠지만. 알까? 모를까? 의도가 있을까? 없을까? 있다면 무슨 의도일까? 없다면 또 무슨 생각인가? 헤아릴 수록 마음만 상하겠지.
어리석음이라면 경멸할까, 연민할까.
나는 이제 어쩌면 좋나. 뭘 하면 좋을까. 같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또 다시 얼얼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남는 것은 곪는 일 뿐이다. 모든게 역하다.
간만에 신나는 노래. 하얗게 지새우며 놀아본 밤은 언젠지 까마득하지만, 여름이 되면 밤놀이가 가고 싶어진다. 작년엔 여름엔 뭐 했더라..
어쨌건 피로와 귀찮음을 이겨내고 운동을 다녀왔으니 장하다 나님. 무작위로 얻어 걸린 노래가 좋아서 지루한 줄 모르고 시간 잘 보냈다. 흥얼거리며 달리다가 혀 깨물뻔..뭔가 신나서 집에 돌아와서도 혼자 흔들흔들 하다가 씻었다. 클럽보단 애인 앞에서 방실방실 웃으며 끼부리고 싶은 노래로고.
아쉬운 것은 시간과 깨끗했던 내 마음이다. 분노가 가시니 나는 내 감정을 버텨내기가 힘들어졌다. 나는 이제 지질하지 않음을 자신할 수 없다. 기댔던 건 그 것 뿐이었는데.
분노보다도 역함보다도 견뎌내기 힘든 것은 슬픔인데, 슬픔은 흰 빛이다. 이를테면 눈 같은. 고요하게 모든 것을 덮어버린다. 슬픔 속에서 눈을 감는 것은 안락한 구석이 있다. 눈발을 헤치며 걷다가 주저앉으면 순간 퍼지는 온기처럼. 나는 눈을 감았던 사람인데, 이번은 다를 수 있을까? 빠져나갈 수 있을까? 빠져나가야 하나? 견딜 수 있을까? 견뎌야 하나? 어느 날은 걷고, 어느 날은 멈춰 서 있고, 또 어느 날은 주저앉는다. 그렇게 모든 것이 아득해진다.
나는 이제 무언가를 동결시켜 놓지 못한다. 순간이나, 마음같은 것. 나는 많이 지쳤는데, 기력의 문제라기보단 자신에게 회의감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해온 것들에 대해서. 지점을 고집할 수 없어서 중심을 잡을 수 없고, 막연히 어딘가로 쓸려가 버릴 것처럼 느낀다. 불안과 체념 사이를 오간다.
여기까지 오면서 나는 참 아둥바둥 했지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자신을 헤아리는 일이었다. 그 알량함을 내가 모를리가. 지금 또한 그렇다. 그러니까, 자르고 삼키는 것은 해보았으니 그러모아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