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은 멘탈적으로 위험한 건 회복기가 아닌가 싶어. 정작 고통이나 괴로움에 잠겨 있을 때는 상념따윈 얼씬도 안 하거든.
나는 침잠한다. 혼자가 된다. 잠긴다. 만끽한다. 씹어 삼킨다.
어떤 감정이나 감각은 말로 길어 올리기엔 너무 무겁거나, 엉겨있어서 분리할 수 없거나. 차마 입 밖에 낼 수가 없다. 검고 더럽고 악취가 나는 것, 날카롭고 예리한 것을. 말하지 못한다. 전할 수 없다. 말하지 않는다. 내가 내뱉는 더러운 것, 예리한 것에는 언제나 그 너머가 있다.
사람은 수렁과는 또 따로 각자의 심연이 있어서. 자신의 심연을 인지하고 응시하는 사람들, 몸을 던지고 때론 품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밤의 주민이라 불렀다.
그 중에는 빛나는 사람이 있는데, 별처럼 휘황하든 반딧불이처럼 아련하든 몹시 아름다운 것이다. 그들은 투신하면서도 삼켜지지 않는다. 나는 그 강함을 동경했다. 용기, 향상심, 기적 같은 이상. 그리고 그 무게를 짊어지는 근력을.
그러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천성이 게으르거나 또는 너무 일찍 지쳐버린 것이다. 나는 일찌기 고요에 매료되었다. 그 속에 있는 나를 누구도 움켜쥐지 못했으므로, 나는 숨지 않고 숨었다.
칼날같은 기로의 긴장에 지친걸까. 나는. 어스름에 서 있을 뿐.
그림자. 반쪼가리. 누군가의, 무엇도 아닌. 무엇이든.
감정이 사치라고. 사방에서 을러대는데.
씹어삼기면 되는 줄 알았지. 아니면 토해내면 되는 줄 알았지. 어느 것도 쉬운 것은 아니어서.
열심은 무엇도 보장하지 않고 노력 끝에 얻은 결실은 행운이 따른 것이란 걸. 알면서도. 몇 번이나 되뇌면서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걸지 않으면 얻을 수 없고, 건 무게만큼 더 큰 행운이 필요한데. 나는 내 피로와 너절함만 보게 된다. 몇 번이나 패배를 읊조렸는가.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낭비를 싫어했다. 기갈들린 사람처럼 뭐든 받아마셨다. 나는 자신을 잊는 감각을 좋아했다.
녹고 있는 건지 흘러가는 건지, 변하고 있는 건지. 달라지는 건지, 자신이 되는 건지, 다른 것이 되는 건지. 나는 자신을 지킬 수 있을지. 제대로 서 있을 수 있을지. 거기서 한 발 내딛을 수 있을지. 앞으로 갈 수 있을지.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을지.
D가 말했다. 나는 혼자이지 않냐고. 내가 걱정하고 염려하는 사람들은 아마 모두, 예전에도 지금도 어떤 형태로든 위로받으며 살고, 그리고 그게 사람일 거라고.
그럼 나는 사람이 아니냐. 하고 말꼬리를 잡아 보았지만 넘어가 주질 않고, 아니, 너는 혼자라고.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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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D에게 겨울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겨울의 미덕을 어떻게 활용하고 무엇을 댓가로 치뤘는지, 어떤 실패를 겪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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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특정한 대상없이. 그런 기분을 깨닫자 두려워졌다. 어쩌면 D라면 나를 완전히 파악해버리지 않을까.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나는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다.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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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마치 달을 따아달라 하는 것과 같이. 손을 뻗는 것도 향하여 걸어가는 것도 아닌 요청. 입 밖에 낼 수 없어 다물었다. 누가 나에게 그런걸 줄 수 있겠는가? 또 어떻게 기다릴 수 있겠는가. 차라리 홀로 계단을 오르는 일이 훨씬 쉬울 것이다. 마지막 계단을 딛고 그래 이정도면 됐어. 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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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 속에서 나는 공주님도 왕자님도 되지 못한 채. 책장은 덮어지고. 감당할 수 없는 이상을 좇다 고꾸라진 아이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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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는 거? 물론 두렵지. 하지만 행복이 주는 두려움에 비할 수 있을까. 그 실체도 없는 먹먹함에.
잃는 것에는, 소모하는 것도 소모되는 것도 상하는 것도 자르는 것도 이골이 났다. 오히려 안도한다. 괴로웠던 것은 상실감보다 죄책감보다 자기혐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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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는, K는, 우리는.
작년 봄에 해남에서 돌아오면서 이제 그의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렇다.
나는 일 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자신을 돌보지도 않았다. 달처럼 둥근 등을 물 위에 놓아주고 손에 스치는 물살을 바라보고 있었다. 등은 이미 보이지 않고, 자른 가지 하나가 떨어질 때마다 꽃잎이 흩어지고 잎사귀가 흩어지고. 어느 것은 성하고, 어느 것은 시들었고 어느 것은 말랐는데, 이내 모두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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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대하면 알게 될까. 알 수 있을까. 그 때가 오면,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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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 열매도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사시사철 푸른 게 낫지. 달콤한 것보다 고아하고 차분한 것이 낫지. 하지만 무엇도 되지 못했다. 달콤한 과실도 한 때의 아름다움도, 고고한 강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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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자신의 탓을 하곤 했다. 자신이 너무 많이, 끝없이 줘서 썩은 거라고. 끝에 끝까지 자신을 짜내면서 지치고 상해도 멈추지 못했다. 썩는 것도 두렵고 소모되는 것도 두렵다. 착취하는 것도, 착취 당하는 것도. 주는 것이 편한 것은 내가 정할 수 있으니까, 요구가 필요한 것은 측량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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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란 같이란 가능한가? 존재하나? 친애나 우애에서 더 나아간 삶을 함께하고 나누면서 서로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무게는 너무나도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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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깨끗한 것은 연민이었다. 그래서 나는 위로하려고 했다. 소모될 뿐인 것을. 소모하느니 소모되는 게 낫다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곳에서 나를 윽박지르는 것만 같았고, 나는 그저 허우적댔다. 괜찮아질 수 없는 것을 확인하게 되느니 그냥 흩어지고 싶다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터무니 없는 기대를 했던 것도 같고, 그 증명해낼 수 없는 기대에 다시 두려워졌던 것 같기도 하다. 초조했고, 자신은 없었다. 시간을 흘렀고 물살은 점점 거세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 쓸려가 버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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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모든 것을 압도한다. 가치도 의미도 추억도. 소중함만큼 나락이 되고, 부여잡을 수 있는 것은 그저 고통이라. 자신을 씹으며 위로받고 또 그 만복에 역겨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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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도망치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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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손 안을 빠져나가는 감촉에 불안해지고, 자신에게 화가 나서. 나는 자신을 다그쳤던 것 같기도 하다. 지탱하고 싶었지만, 서보려 할 수록 휘청거렸고, 그건 그대로 진동이 된 거겠지. 내 연민은 얄팍하고 나는 너를 위로할 수 없다. 무력하다. 흐르는 물은 무정도 하다. 지는 꽃은 다정하고, 정의 증거니. 나는 마지막까지 부여잡고 있던 것도 흘려 보내기로 한다. 계절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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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괜찮아질 수 있을까? 유예나 유지가 아닌. 나는 자신을 납득시켜야 한다. 임무나 책임 없이도, 쓸모 없이도 무언가를 구체화 할 수 있을까.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체념한 것들을 찾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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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받아들일 줄 알고, 그것을 당연시 여기지 않으며, 고마워 하고, 그것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마음을 받아들일 줄 알고 또 줄 수 있는, 손 안의 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파괴적인 동물적 본능이 아니라 오히려 억압적으로 사회적인 도덕성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뿌리 깊은 정서와 맞서야 한다는 인식이 칼 포퍼의 사회사상에서도 발견된다. [열린사회와 그 책들 - 칼 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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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과 거짓으로 판별되는 형식논리와는 달리, 보통의 발화는 이렇게 매우 엄격한 이분법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주장을 참과 거짓으로 구분하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는 뉘앙스에 꽤 민감하다. 오히려 우리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표현은, 그 오류가 매우 미미하거나 전문적인 표현에 해달할 때, 또는 표현이 거의 참에 가깝고 오류를 매우 쉽게 바로잡을 수 있을때이다. 우리는 기만과 터무니없는 기만, 또는 거짓말과 허풍을 구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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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들은 사물의 본성에 내재한 게 아니라, 문화 속에 존재한다. 문화를 구성하며 문화에 의해 주입된다. 그 확산은 결코 유전적인게 아니다. 어떤 개념은 보편적이어서 모든 문화에서 공유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개념들이 보편적이고 공유될 수 있는 까닭은, 자연은 보편적으로 특정 패턴을 드러내고 문화는 이를 늘 반영하기 때문이다. 또는 모든 문화, 모든 관념 체계의 구조적 전제가, 다른 것들을 체계화하도록 돕는 관념, 말하자면 동일한 서비스 개념을 언제나 낳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관념들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근복적이고 벗어날 수 없는 외부 현실의 특징을 반영하거나, 아니면 인류에게 공통된 유전적 경향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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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무언가를 할 수는 있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생각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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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생각할 만큼 자유롭지 않다. 사람은 관념에 얽매여 있고 그 관념은 사회적으로 공유된다. 칸트와 마찬가지로 뒤르켐도 도덕적 강제와 논리적 강제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지만, 그 똑같은 뿌리가 무엇인가를 두고는 칸트와 달리 생각했다. 뒤르켐에 따르면, 제의의 일차적인 기능은 개념을 각인시키는 것이었고, 그로써 개념 안에 담겨 있는 강제와 의무를 우리 의식과 감정에 새겨 넣는 것이었다. 우리는 집단적인 흥분을 통해 영향을 받기 쉬운 상태가 되어 '개념화'에 적합해진다. 이 과정은 세뇌와는 다르다. 세뇌는 더 나중에 나타난다. 공유되는 개념과 공유되는 강제가 우리를 사회적 인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우리를 사회적이고 인간적으로 만든 것은 사실상 이 두 가지이다.
담배를 태우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점토를 아무렇게나 뭉친 것 같은 심통[痛], 시간이 흐르고 굳어져 뭉친 자국이 흉터처럼 각인될 지경이 되어서야 겨우 알아차리게 되는 고약한 성질의. 심장에 엉겨붙은 굳은 흙덩어리를 태워 후두둑 떨어트리게 하는 그런 몽롱한 후련함을 알게 되었다. 작년의 일인 것 같다.
동생이 타지에 나가면서 두고 간 말보로 한 갑을 나는 홍차틴으로 가득 찬 서랍에 넣어두고 생각이 날 때마다 한 개피씩 꺼냈다. 이제 다섯 개피가 남았는데, 입으로 잘근잘근 씹어 필터만 못 쓰게 만들고 버린 것이 두어 개피쯤 되니까 평균을 내어보면 한 달에 한 개피다. 이렇게 계산해보니까 꾸준히 피운 것만 같네.
나는 능숙하지도 미숙하지도 않게 첫 담배를 태웠는데, 아직도 그렇게 태운다. 익숙해지지도 않고 잊어버리지도 않고.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태워버리고 나면 원하게 될까, 매캐한 연기를 돈을 지불하고 사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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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것은 묶이는 일이다. 두려운 것은 자신에 대한 통제를 잃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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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해 재잘거렸다. 영상에 몰입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공간을 시간을 현재를 좋아하는 것들로 꾸며놓고 들어갔다. 노력해서 들어갔다. 나는 내가 얼고 있는지 녹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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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가 말했다. 진짜를 요구하는 나는 오만하지만, 그럴 자격이 있다고. 그리고 진짜를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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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서는 겸손을 자주 부리면서 이따금 성질머리가 드럽고 까다롭고 오만하다고 고백하는 나는 그제서야 내 오만을 납득했다.
고고한 오만함. 나는 어지간한 것들을 불평없이 씹어먹을 수 있겠지만, 선택의 영역이라면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절대로 손에 쥐지 않을 것이다. 그 높고 까다로움이 확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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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진짜는 없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살아있는 진짜는 없으니까. 이미 잃었으니까, 땅 속의 씨앗인채, 깨지지 않은 알인채 끝나버렸으니까. 껍질 밖으로 나오지 못해서, 땅 위로 올라올 수 없었으니까. 자신만 품다 끝나버렸으니까. 나는 원하는 것이 없었다. 그때도, 또 두 번째도. 차마 바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사람은 홀로 태어나 홀로 죽는데, 자기 자신도 어쩌기 힘들잖아. 자신의 무게를 버겨내는 것만으로도. 소유욕의 끈적함을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에 비해,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아득하게 멀고, 꿈 같았고, 닿았던 순간은 찰나였나. 눈이 손에 닿아 녹는 순간의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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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는 것은 자신에게 지지 않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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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의 무게에 맞서는 것인 동시에, 외부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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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를 읽고 있다. 도서관에 안 가다가 못 간지 어언 일 년 바안. 문화센터의 책장에서 힘겹게 책을 고르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코끼리 공장 어쩌구와, 발랜타인과 무말랭인가 어쩌구..를 보고 분노했다. 재미도 없고 라디오에서도 안 할 시시껄렁한 잡담을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유만으로 번질번질한 종이에 인쇄에 양장으로 엮어낸 것을 보고. 내가 읽은 것은 스푸트니크의 연인과 몇몇 단편집, 수필집 정도인데, 괜찮게 보았던 단편집을 다시 읽어보아도 어딘가 심기가 거슬리는 부분이 있어서 꼰대라고 까고 싶었다. 그런데 대표작은 하나도 안 읽었던지라.
나는 너무 바글거리면 어쩐지 한 발 물러나게 된다. 아마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 습관때문에 그런가. 베스트셀러는 예약까지 꽉꽉, 매대에서 인파를 비집고 물건을 손에 쥐는 것과 비슷한 수고로움이므로, 나는 그 사람들이 흩어질때까지 다른 것을 기웃거리는 습관이 든 것 같다.
그래서, 상실의 시대가 노르웨이 숲으로 민음사 고전계열에 끼게 된 이제서야, 상실의 시대 구판을 뒤적이고 있는 것이다.
거리를 재는 것 뿐. 그것만을 할 수 있을 뿐. 이라고 했었나 오래 전에 본 말인데, 달리의 시계 이미지만큼이나 고집스럽게 기억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젠 나도 알게 됐다. 결국 따지고 보면-하고 나는 생각한다-글이라는 불완젆나 그릇에 담을 수 있는 건, 불완전한 기억이나 불완전한 상념밖엔 없다는 것을' - 상실의 시대
동생방에서 발굴한 아사쿠라 다쿠야의 '눈의 야화'를 읽었다. 어딘가에서 이런 말을 보았다. '설'명하지 말고 '표'현하라고.
다장조같은 책이었는데, 다장조의 미덕도 갖고 있었고. 하지만 너무 친절하달까. 표현에 설명을 덧대어 놓은 게 꼭 자전거의 보조바퀴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보니 일본작가는 설교를 하는 편이라고. 일드에도 종종 나오지 스낵바의 마담이나 관록있는 형사나.
그러니까 나는, 그가 명민해서 얄밉다.
단편집에서 이미 꼰대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1Q84까지 죽 읽으면 뭔가 좀 보이겠지.
'영악한 악녀가 아니라 진정한 팜므파탈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라고 했던 온다 리쿠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어떻게 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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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의 말은 큰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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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을, 자신을 믿지 않는데, 자신과 타인에 대한 불신은 서로 핑퐁을 하며 공을 살려놓는다. 멈추지 않는다. 시발점도 유지되는 원인도 알고 있는데, 눈을 감아버리는 것 말고 질질 끌려가지 않는 방법은 몰라서.
자신의 생각이나 감각에 대한 불신이 있다. 확인하고 두드리고 디디고, 내 역량만큼 포인트를 정해놓고 최대한 파악한다.가 기본. 시점을 이리저리 돌려보는 것은 딱히 단점이 아니다. 에고란 결국 간격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과잉, 과부하가 걸린 다는 거겠지. 나는 내 무게에 짓눌린다. 내 무게만이 아닌 무게, 울려서 메아리로 증폭되어 돌아오는 소리에 머리가 울리듯 나는 짓눌린다. 굳어버린다.
그 경직을, 통제권의 상실을 두려워하니 나는 최선을 다해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고, 온 집중력을 다하기 때문에 성공률도 높고. 또 하나의 역인 현재, 사실이 존재하게 된다. 나는 거짓말에 서툴러서 대단한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린다. 역에서 역으로 반복하는 동안 나는 생각한다. 언젠가 이러다 뻥 터져버릴 거라고. 자신이 너무 싫어졌기 때문에 그래야 마땅하다고 여기고, 터질거라던가 터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 유일한 바람이자 마땅한 일인 것처럼.
꿈과 현실이 어그러져버린 때부터.
똑바로 봐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전에 납득했다. 내 집요함과 집중력은 언제나 그런 곳에 발휘되었다. 파고, 파는 것. 하지만 그렇게 드러난 현실은 언제나 내 근력보다 무거웠고, 나는 이제 지쳐서 단련의 쓸모조차 의심스럽다. 기력도 예전과 같지 않거니와 방향도 잘 모르겠고, 뭔가가 시작된다면 그건 아주 길 것 같고, 어려울테고, 자신같은 것은 가져본 일이 드물어서. 그리고, 나는 아주 달라질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해 온 방식은 모두 낡은 것이 되고, 전혀 다른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아우르면서도, 전혀 다른 것.
내가 이 극을 벗어날 수 있을까?
착취하거나, 착취당하거나. 베풀고 받는 것, 애와 어른, 지켜주고 기대는 것. 그런 극, 역과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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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퓨리가 캡틴에게 말했다. 아무도 믿지 말라고. 그래서 캡틴은 어떻게 하냐면, 사람을 참 덥석덥석 믿어버린다. 동료를 모으고 심지어 쉴드에서 말 한마디로 히드라 멤버들을 솎아내 버린다. 캡틴 로저스가 누구냐, 그 군대에 지원해도 받아주지 않는 몸으로 국가, 약자, 타인에 대한 봉사정신을 소유한데다 그 마음을 확신해서 역변에 성공하는 인물, 신뢰가 무기인 사람이 아니던가. 토르처럼 강함을 타고나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 고결한 마음 하나를 가지고. 자신을 믿는 사람, 자신이 무엇인지 알고 그 무게를 견디고 자신의 간격 밖으로 손을 뻗는 사람. 캡틴이 정말 대단한 건, 나는 이러니까 퓨리의 말을 튕기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참고하고 그렇게 흔들리면서도 결국 자기 자신이 된다는 점이다. 그는 정말로 강하다. 옳은 뜻이 실재하게 만드는 건 그런 사람들이겠지.